침묵

사랑의길 on 01/18/2026 10:36 PM

2년 전쯤이다. 아침 미사를 마치기 무섭게 미사 해설 봉사자 자매님에게 달려가 진행에 대한 몇 가지 안타까움을 직격했다. 그러나 상대편은 고분고분했지만 인신공격을 당한 듯 불쾌함이 역력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날이었던가, 며칠 지나서였던가 그 자매님으로부터 노기에 찬 항의를 받았다. 그때 백배 사과를 하고 다짐했다. 이제 다시 이런 같잖은 짓을 하지 않으리. 그러나 최근 또 병이 도졌다.

“신부님, 이건 개신교 성경 구절 같은데요.”

오늘 아침 성전 입구에서 신자들을 환송하고 계신 신부님 코앞에 스마트폰을 들이댔다. 그것은 미사 때 성전 컴퓨터 모니터 화면에 걸린 켈리그라피체 성경 구절 샷이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로마서 11장 17절. 더구나 장절 표시도 틀렸다. 우리 성경은 로마서 10장 17절-‘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 이다.

“아니, 봉사자들이 조금만 신경 쓰면 될 텐데 인터넷에서 괜찮다 싶으면 그냥 긁어다 쓰다 보니….”나는 혀를 찼다. 거기다 하나 더.

“주보에 ‘구정’ 합동미사’라니요, ‘설날’ 합동미사죠.”

덧붙여 설날로 확정된 배경을 장황하게 늘어놓는데 아무래도 신부님의 기색이 아니다 싶었다. 앗 뜨거라, 그러나 불편해진 건 나 역시 마찬가지. 나는 볼멘 소리로 맹세하는 이스라엘 백성처럼 외쳤다.

“신부님, 이제 다시 이런 말 하지 않겠습니다!”

소설가 헤밍웨이는 말을 배우는 데는 2년이 걸리지만, 입을 다무는 법을 배우는 데는 60년이 걸린다고 했다. 어쩌나 벌써 60 고개를 반타작한 나에게 침묵이란 여전히 어림없는 것. 설령 입을 다물었다 할지라도 그건 사막의 교부 요한 카시아누스의 지적대로 겸손과 인내를 증거하려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원한을 더 오래 간직하려고 양의 탈을 쓴 위장일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