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센 믿음으로 간절히 바라오니,
더프 형제의 중재를 통하여 저희들이 드리는 청원을 (… …)
허락하여 주시기 바라나이다.”
몇 해 전 레지오 꾸리아 주회에서 그렇게 프랭크 더프 시복 청원 기도를 바쳤을 때
“중재라고요? 중재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하신 거예욧!”
B 자매님의 눈이 똥그래지며 쏴붙였다. 그 기도문은 내가 10년도 훨씬 전부터 써 왔던 것이었다. 그새 뭐가 바뀌었나, 정신 차릴 틈도 없이 또 갖다 붙이기를,
“중재가 아니라 전구에요, 전구!”
성령기도회에서 아브라함이 소돔을 구하기 위해 하느님과 흥정하는 장면을 본떠 제삼자가 누구를 위해 기도해 주는 것을 ‘중재기도’라고 배웠다(개신교는‘중보기도’라고 한다데). 나는 자매님의 다그침(?)이 몹시 억울했다. 신부님이나 수녀님께 저를 위해“기도해 주세요” 할 때도 그럼“전구해 주세요” 해야 하나, 하면서.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중재자는 오로지 예수님이시니 아무 대꾸도 하지 못하고 벙어리 냉가슴으로 세월이 흘렀다.
그런데 지난 11월 4일 교황청 신앙교리부에서 관련 공지가 하나 떴다. ‘충실한 백성의 어머니(Mater Populi Fidelis)’라는 문헌이다. 여기서 성모님을‘공동 구속자(Co-redemptrix)’로 칭하는 것은 구속이 그리스도의 단독, 유일한 행위이므로 부적절하며 "중재자(Mediatrix)"라는 표현 역시 (예수님의 유일한 중재를 모호하게 하는 것을 피하고자) 여러 해석과 설명이 필요하다면 신자들에게 혼란만 줄 뿐, 신앙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리고 성인들의 전구, 교회의 기도, 사제의 직무 등은 그리스도의 종속적 중재에 해당한다고 덧붙였다. 이 원리를 따른다면 우리도 그리스도의 유일한 중개자적 역할에 동참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면 그러시지, 아무려면 예수님께서 좋은 것을 당신 혼자서 독점하실까?
덧말: 불현듯 레지오 교본 책갈피에서 낡은 내 프랭크 더프 시복 청원 기도문을 찾아봤더니 이미 ‘중재’를 줄로 긋고‘전구’로 바뀌어져 있다. 아마 그때 그랬으리라. 설명이 필요한 용어는 피하는 것이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