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전승절에서 만난 김정은과 푸틴이 회담하는 뉴스를 접하면서 모골이 송연해졌다. 김정은이 우크라이나 북한군 파병은 형제의 의무라고 러시아 간 두 나라가 혈맹임을 강조했다는 화면을 내보낸 뒤 방송 기자는 갑자기 특유의 들뜬 음성을 낮추더니
“북한군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1만 오천 명이 파병돼 그 가운데 2천 명이 넘게 러시아를 위해 숨진 상황”이란다.
중국 출발 전 김정은은 우크라이나 파병 전사자 유가족을 만나 눈물바다를 연출했었다. 이때 앵커는 한 손에 든 A4용지를 흔들며 푸틴과의 만남을 대비, 이른바 파병 청구서를 준비하는 작업이었다고 격분했다.
독재자의 ‘혈맹’이란 선언에 얼마나 많은 젊은이가 피의 대가를 치렀던가?
50여 년 전 대한민국도 미국이 판을 벌린 월남전에 뛰어들어 새파란 목숨 5천여 명을 잃고 1만 1천여 명이 다쳤다. 그때 독재자도 은혜를 갚기 위한 숭고한 희생이라고 울부짖었다. 실은 쿠데타로 집권, 취약한 정통성을 미국의 지지로 만회하려는 야욕이었으면서. 그 결과 받아 낸 돈으로 경부고속도로를 깔아 70년대 경제부흥의 시초가 됐다나. 심지어 성경에서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말씀으로 산다고 일갈하신 예수님을 따른다는 신자조차 이런 궤변에 맞장구를 치는 것을 봤다.
우크라이나가 도발했나, 월남이 도발했나? 지금의 북한이나 그때의 남한이나 강대국이 일방적으로 약소국을 침략한 남들의 전쟁에 젊은 피를 팔아 정치적 경제적 난국 돌파하기를 ‘혈맹’이란 말로 포장하고 있다.
혈맹, 이 외교적 구태의연한 수사를 대하면서 속으로 나는 그리스도인에게 진정한 혈맹이란 최후의 만찬 때 빵과 포도주를 나누시며 "이것은 죄를 용서해 주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계약의 피다."(마태 26, 28)라고 피로써 구원을 약속하신 예수님과의 관계라고 곱씹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