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도

사랑의길 on 04/21/2025 10:23 PM

우리 집에 연도가 났다. 연락을 두절하고 스스로 5남매의 왕따가 됐던 큰처남이 갑자기 운명했다. 장남의 의무는커녕 막무가내로 부모.형제를 등진 동갑내기 그를 나도 미워하고 있었다. 도통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불효막심한 놈이라도 끝까지 살아남아야지, 나는 욕사발을 날리며 거위 목을 연신 잡아채 꺾듯이 울음을 삼켰다. 식탁에 흰 보를 씌우고 향을 피웠다. 받침에 술잔을 얹는 데 따를 술이 마땅치 않다. 그는 애주가였다.

터진 물풍선이 된 데레사가

“조니워커 블루 어때?”

딸내미가 케이스를 열고 뚜껑을 따자, 컥컥 계속 말을 이었다.

“이거 지난번… 한국 나갔을 때 오빠 사준 거랑… 같이 산 거야. 누가 준 시바스가… 그렇게 맛이… 좋았다길래….”

과포를 담고 쒀 뒀던 도토리묵에 종지로 양념장도 올렸다. 그래도 여백이 크다. 카톡의 처남 계정을 열어 넥타이 말쑥한 상반신 사진을 찾아내곤 잿상 중앙에 스마트폰 영정을 모셨다. 급조한 빈소가 마련됐다.

“실큰 드시우, 거기선 아무리 마셔도 취할 일 없을 테니….”

술을 따르며 나는 그동안의 적의를 거두었다. 그리고 우리는 고적한 하늘 아래 전깃줄 위 조로록 앉은 네 마리 제비처럼 한 줄로 앉아 연도를 바쳤다. 빈소를 거두며 나는 혼잣말처럼 읊조렸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우리 큰처남 손을 잡고 천국 문을 여셨겠지. 같은 날 선종하셨으니….”

자비로우신 하느님, 주님께서 사랑하신 종, 교황 프란치스코와 함께

역시 사랑하신 박성연에게 천국의 영원한 기쁨을 얻게 하소서!*

 

                                                                                                                                        @Photo by Esther Choi, 2025 Honolulu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의 교황님 선종 애도 메시지에서 차용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