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가 영대를 두르고 거룩한 미사와
성사를 집행한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
지금은 결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1786년부터 1787년경까지 초기 한국
천주교에서 벌어진 가성직제도이다.
1784년 북경에서 각종 성사들을 직접
목격한 이승훈 베드로가 1785년 을사
추조적발사건으로 인해 위축된 세를
회복하기 위해 제안한 자구책이었다.
이승훈 외에 10명을 사제로 임명하고
임지를 정하여 미사와 성사를 집행한
결과 전보다 신자가 천 명 이상 늘었다.
그러나 유항검 아우구스티노가 책자
성교절요(聖敎切要)를 가만 살펴보니
사제품이 없는 자의 성사는 독성죄로
크나큰 잘못임을 깨우치고 당장 멈춘
다음 북경 교구장님께 도움을 청했다.
그때 주교님은 무지로 비롯된 일이라
누구에게도 잘못을 묻지 않았다 한다.
잘난 내 눈에는 분명히 해프닝이지만
아, 주님은 벌써 그렇게 시작하신 것을.
“예수님께서 그들을
파견하기 시작하셨다.”(마르 6,7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