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햄릿처럼 이런 비장한 결단을 내릴 일이
살며 얼마나 되랴만 선택 갈등이 갈수록
심해지는 건 폭이 넓고 다양해진 탓이다.
오죽하면 ‘아무거나’란 메뉴가 등장하고
‘결정장애’가 이제는 일상용어가 됐을까?
선택이 힘든 이면엔 잘못됐을 경우 닥칠
책임과 비난이 두렵거나 포기할 저게 더
낫지 않을까, 기회주의적 속성 때문이다.
이 고을에 더 머물 것인가, 떠날 것인가?
이런 선택 장애가 올 때 오늘 새벽 일찍
일어나 기도하신 후 떠나시는 예수님의
모습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다른 고을들을 찾아가자.
그곳에도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마르 1,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