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70 여년이 지난 지금도
한국천주교회의 첨탑에 드리운
반민족 친일의 그늘이 무겁다.
1909년 조선 침탈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하얼빈에서 저격 암살한 안중근 토마를
당시 조선교구장 뮈텔 주교님은
살인범으로 단죄하였다.
오카모토 가네하루(岡本鐵治)로 창씨개명한
경성(서울)교구장 노기남 대주교님은
1942년 천주교 공식 기관지 ‘경향잡지’를 통해
대동아전쟁을 일으킨 일제에
진심으로 복종하라는 담화문을 발표했다.
더구나 '친일인명사전'에 따르면,
1937년 7월 중일전쟁 이후 1939년 말까지
천주교의 부일협력 행위로
시국관련 기원미사 29,622회,
기도회 55,452회가 열렸다고 한다.
일제에 항거 신도 10만 여명이 목숨을 잃은
대종교와 비교하면 할 말이 없다.
그렇더라도 혹독한 박해 끝에
세운 교회를 친일이라도 해서 지켰기에
7,80년대 김수환 추기경님을 정점으로
한국천주교회가 독재정권에 맞서
한국민주주의를 쟁취하는
역사의 변곡점을 만들지 않았느냐, 하면
지나친 역설(逆說)일까?
마치 오늘 대사제 카야파의 대예언처럼.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여러분에게 더 낫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헤아리지 못하고 있소.”(요한 11,50)
“악을 꾸몄지만,
하느님께서는 그것을
선으로 바꾸셨습니다.”(창세 50,20)
뱀발: 1993. 8. 21 서울 혜화동 가톨릭교리신학원 성당에서 봉헌된 안중근 토마 추모 미사에서
김수환 추기경님께서 안 의사 의거의 정당성을 인정하고 복권, 당시 제도 교회의 과오를
사과하셨다. 이어서 개최된 심포지엄에서 김 추기경님은 제도 교회의 친일 행각에 대해
한국인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과오였다고 인정하셨다. 그리고 2000. 12. 3 새천년기를
맞아 일제시대를 거쳐 그 동안 저지른 과오를 반성하는 '쇄신과 화해' 문건을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 박정일 주교)의 명의로 발표하고 전국 각 교구와 본당에서 참회예절을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