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세상 어디서 누군가 울고 있다
세상에서 까닭 없이 울고 있는 그 사람은
나를 위해 울고 있다
지금 이 세상 어디서 누군가 웃고 있다
한밤중에 까닭 없이 웃고 있는 그 사람은
나를 위해 웃고 있다
지금 이 세상 어디서 누군가 걷고 있다
정처도 없이 걷고 있는 그 사람은
나를 향해 오고 있다
지금 이 세상 어디서 누군가 죽어가고 있다
세상에서 까닭 없이 죽어가는 그 사람은
나를 바라보고 있다.”
명배우 마를레네 디트리히(Marlene Dietrich:
1901-1992)는 스무 살에 건초염으로 그토록
소망했던 바이올리니스트의 길을 접고 절망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던 중 릴케의 이 시
‘엄숙한 시간’을 읽고 크나큰 위안을 받았다.
세상 혼자인 줄 알았는데 어디서 나를 위해
누군가 울고, 웃고, 내게 걸어오고, 죽어가며
바라본다는 릴케의 위로가 생의 최대위기에
처했던 그녀를 구한 들것이 되었던 것이다.
그렇다, 나 역시 주변 누군가 희생과 격려가
들것이 돼 지금 여기까지 데려다 놓은 것을.
“중풍 병자가 누워있는
들것을 달아 내려보냈다.”(마르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