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일 본당 신부님께서 한글학교
교사가 부족하다며 일꾼을 찾으셨다.
지금 학생들이 스무 명 정도 선생님은
세 분이 수고하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다섯 반으로 나눈 인터넷 수업이라도
짐작하건데 최소 교사 둘은 부족이다.
신부님은 누가 자원하면 좋아서 뛰어
나가 맞을 거라고 덧붙이며 웃으셨다.
언제나 그랬듯이 나는 귀 흘려들었다.
내 상관할 바 없으니, 정말? 아, 나여!
지금까지 내적 진보가 드딘 이유가 늘
구약 야훼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을,
신약의 예수님 말씀은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향한, 나와는 아무 상관
없는 얘기로 듣고 흘려왔기 때문이다.
한글학교 봉사, 필드에서 못 뛰겠거든
물 주전자라도 들든지 이도 안되거든
뒤에서 응원을 하든지, 기도로 말이다.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루카 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