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최경환 프란치스코의 치명과
같이 수감 된 갓난막내 최 스테파노가
젖이 말라 굶어죽어 나가자
육신이 너덜너덜한 형벌을 당했어도
용감하게 신앙을 증거했던
이성례 마리아는 마음이 흔들렸다.
결국 복녀는 석방의 길을 택했다.
그러나 장남 최 토마스가 신학생이란
사실이 발각, 다시 형조로 압송되었다.
복녀는 재판관 앞에서 전에 한 말을
취소하고 막내를 하느님께 바친 것을
기뻐하며 모든 유혹을 떨쳐냈다.
관례대로 복녀는 사형선고를 받았고
드디어 1840년 1월 31일, 당고개에서
참수형으로 영광스럽게 순교하였다.
모든 순교자가 그랬듯이 순교 당시
복녀의 얼굴도 안온하고 평화스러웠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요한 14,27)
오늘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화가
바로 이성례 마리아의 평화였던 것을.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에페 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