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신부님들은 강론 말미에
자주 그렇게 마무리를 하신다.
‘우리’는 1인칭 복수형으로써
말하는 이 듣는 이 모두
일체감과 친밀감을 느끼게 한다.
“우리는 곧 마케도니아로
떠날 방도를 찾았다.”
오늘 선교단은 아시아쪽이 아니라
유럽으로 방향으로 선회했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통해
현존하시고 활동하시는 것을.
“마케도니아에 복음을 전하도록
우리를 부르신 것이라고
확신하였기 때문이다.”(사도 1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