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h, My friend!”
난생 처음 보는 마빡에 피도
안마른 어린 것이 싸가지없이
친구라 부르면 이제 미국문화를
웬만큼 이해할 때가 되었음에도
나는 불쾌하기 이를 데 없다.
동방예의지국 포장의 장유유서,
정확히 말해 연령서열문화에
아직도 젖어있기 때문이리라.
1년 단위 나이로 끊어 오랜동안
서열화된 사고는 계급이 되어
손위든 손아래든 나는 친구로
부르거나 불리기가 꺼려진다.
어쩌면 원수를 일흔일곱 번
용서하는 것이 쉽지 자식뻘을
친구라 부르며 상대하는 일이
훨씬 더 힘들지도 모른다.
“사랑 안에서 살아가십시오.”(에페 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