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가가 보믄 안되나?”
먼 데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나에게 기도 안차시다는 듯
선친은 그렇게 말씀하셨다.
결국 안경점에서 근시교정
안경을 맞춰 썼는데 당시
한 반에 안경잡이가 손가락
꼽을 정도였으니 아버지의
탄식도 무리는 아니셨다.
그리고 근 반세기 안경이
신체 일부가 되었는데 이제는
안경을 벗어야 책을 읽고
스마트폰을 밀 수 있게 됐다.
원시, 노안이 온 것이다.
돋보기 없이 볼 수 있는 것,
그동안 근시로 고생한 보상,
혜택이랄 수 있지만 툭하면
안경을 훌렁 벗어야 하는
수고로움과 민망함이 있다.
그렇다, 젊어서 근시는 멀리
보고 나아가라는, 원시는
나이 들수록 가까운데를 더
살피고 챙기라는 뜻인 듯.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마태 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