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너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냐시오야, 참 훌륭한 고백이구나.
그런데 넌 불행하다! 그것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알려 주신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서 배웠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대답을 대신해서 다 해주는
통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는
무엇을 가르쳐주실 틈이 없으신 거다.*
갈수록 체험적 신앙고백이 어려운 건
주님의 말씀을 새기기보다 먼저 나온
정답부터 귀 기울이기 때문이 아닐까?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마태 16,15)
*Anthony de Mello의 '종교박람회' 중에서 재구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