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안 있으면 우리 공동체는 이제 곧 또다시 바자회를 열게 된다. 작년에 이어 본당의 날을 맞이하여 여는 이 바자회 행사에 대해서 한번쯤은 짚고 넘어가고 싶어 글을 올린다.
페르시아어의 ‘시장(bāzār:바자르)’에서 유래된 바자(bazaar)는 오늘날에 와서 ‘공공 또는 사회사업의 자금을 모으기 위하여 벌이는 시장’의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우리말로는 ‘바자회’, ‘자선장터’, ‘자선 특매장’등으로 불리고 있다.
짧은 기억 속에 우리 본당에서도 2008년 7월 19~20일 양일간에 걸쳐 지역사회를 대상으로 기금모금 바자회를 대규모로 연적이 있다. 당시 많은 물품이 도네이션되었고 양일간 다 소화하지 못한 물품은 자선단체에 기부를 했으며 바자회 수익금 약 이만오천여불(담당자가 아니라 정확한 금액은 기억하지 못하니 오류가 있으면 정정해주시기를 바란다) 정도가 본당기금으로 적립이 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때 우리 본당 모든 형제자매들이 한데 뭉쳐 기쁨 속에 행사를 열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물론 이 과정 속에서 너무 많은 도네이션이 들어와 준비하는 과정에 어려움도 있었고, 가끔은 판매하기 어려운 정도로 상태가 열악한 물품이 도네이션으로 들어와 그 처리문제로 약간의 애로가 좀 있었지만 다같이 좋은 뜻으로 한 일이니 그쯤은 각오하고 넘어가야 할 일이라 생각된다.
그런데 다가오는 바자회를 앞두고 작년 바자회의 기억을 떠올려보면 몇 가지 고쳐야 할 일이 있다고 생각되어 홈페이지를 빌어 의견을 내고자 한다. 올해는 좀 더 나아지기를 바라며…
첫 번째로, 작년의 경우 도네이션 물품 대상을 ‘새것이나 새것에 준하는 물품 또는 현금’이라 국한시켰던 기억이 난다.(이것은 약간의 언어순화는 있지만 올해의 바자회에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듯하다.) 물론 예전에 열악한 상태의 물품이 도네이션 된 적이 있었던 기억을 떠올리고 만들어낸 문구라고 이해되기는 하지만 바자회를 하는데 있어 그 정도 어려움은 각오해야 할 일 아닐까? 준비과정의 어려움을 먼저 생각해서 바자회의 도네이션 물품을 새것이나 새것에 준하는 물품으로 제한하고나니, 기부자 입장에서는 다른 바자회라면 충분히 도네이션 할 수 있는 물건임에도 괜히 냈다가 헌 것을 가져왔다고 욕이나 먹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에 선뜻 기부하기 어려워 포기할 수 있고 또 실제로 그런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물론 본인도 같은 이유로 결국은 신상품 몇 개만 기부한 채 나머지 물품은 다른 자선단체에 기부해버리고 말았음을 밝힌다. 바자회에 기부할 물건은 기부자 본인의 양심으로 판단해서 기부해야 할 일이 아닐까? 거기에 덧붙여 현금을 도네이션하라니? 도대체 현금을 받아서 장터에서 얼마에 팔 생각이란 말인가? 물론 바자회가 기금을 조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기는 하지만 바자회 물품으로 현금을 도네이션하라니? 기부금은 별도로 모금을 해야지 바자회 물품으로 현금 도네이션을 받는다는 발상은 영 납득하기 어렵다.
두번째로는 ‘누구를 대상으로 하는 바자회인가?’라는 점을 생각해봤으면 한다. 물론 한국의 경우에는 본당이나 각 단체에서 ‘아나바다’라는 형식의 장터를 만들어 우리끼리 물건을 재활용하고 그 부산물로 기금조성을 이루어나가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우리’라는 전체집단의 규모가 어느 정도 큰 경우에 적합하고 집단중의 일부가 준비해서 집단 전체를 대상으로 행사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물론 그 중 준비자나 판매자가 구매자가 될 수도 있겠지만.) 2008년의 바자회의 경우에는(물론 우리 본당신자들도 구매자가 되기도 하였지만) 명백하게 ‘우리 본당의 신자들이 힘을 모아 지역사회를 대상으로 판매’를 하는 바자회였다. 그런데 작년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우리끼리’의 바자회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물론 이것이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교중미사 참가자수가 삼백명 남짓(?)한 신자규모에서 모든 소공동체, 신심단체들이 이 행사에 동원되다 보니(물론 포기한 곳도 있다) 어떤 이는 두세 곳에 속해서 어려움을 겪기도 했고, 결국 신자들끼리 ‘우리’가 도네이션하고 ‘우리’가 만들고 ‘우리’가 사는 ‘아나바다’형식의 바자회가 되다 보니, 음식장터의 경우 그 문제가 극명해져서 ‘내’가 만들어 ‘너’에게 팔고 ‘네’가 만든 것을 ‘내’가 사먹어야 하는 웃지 못할 일이 발생되었다. 판매자와 구매자가 동일 집단이 되다 보니 발생되는 해프닝이다.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내’가 재료비 $5을 들이고 몸으로 봉사해서 만든 음식을 ‘네’가 $8에 사먹고, ‘네’가 $6불의 비용에 수고를 보태 만든 음식을 ‘내’가 $9에 사먹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6의 이익금으로 기금이 조성된다는 이야기인데 남은 음식처리문제도 고려해보고 거기에 ‘바자회티켓’이라는 것을 강요 아닌 강요(필요하면 주일날 성당에서 구매하면 되는 일을 소공동체에 일정액씩 할당해서 주일날 성당에서 구매하는 데서 오는 불편을 덜어주는 친절한 금자씨의 역할이었다고 이해하고 싶다)로 구매해야 하는 상황이 있었음 까지 보태어 생각해보면 차라리 애쓰지 말고 내가 $3 도네이션하고 네가 $3 도네이션하면 될 일을 여러 사람이 수고해야 하고 많은 사람들이 고생해야 하는 과정을 거쳐 이루어지는 모양이 된다. 게다가 반찬종류를 사다가 파는 단체에서는 당일 다 팔지 못해서 다음주까지 들고나와 파는 해프닝도 덤으로 주어졌다. 뭐 우리가 재료를 구입하는 돈이 지역사회 경제발전에 기여하지 않았느냐, 다같이 수고하고 봉사하며 친교를 이루지 않았느냐, 이렇게 주장한다면 할 말은 없다.(정말 목적한 만큼의 친교가 이루어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단지 조금 더 방법을 개선했으면 하는 이야기다. 그런데 올해도 또다시 바자회 티켓 창구가 버젓이 있음에도 일정부분에서는 또 강요 아닌 강요로 팔아야 하고 사야 하는 모습을 보니 안타깝기만 하다. 다만 음식판매가 일부 단체(소공동체?)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다행이다.
세번째로는 가장 중요한 바자회의 목적이다. 왜 바자회를 해야 하는가? 본당의 날이 되니까? 매년 연례행사로 그냥 바자회를 해야 한다? 이렇게는 생각하지 않고 싶다. 더욱이 요즘 몇 번 듣게 되는 이야기 ‘돈을 남기는 것보다는 친교가 목적이다?’라는 말은 물론 이익을 목적으로 폭리를 취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에서 나온 이야기겠지만 친교가 목적이라는 말은 참 긍정하기가 어렵다. 친교의 수단이 그것밖에 없는가? 아님 바자회가 친교라는 목적을 달성할 수 최고의 수단이란 말인가? 대부분이 아시다시피 바자회의 목적은 대체로 기금조성에 있다. 이 말은 기금조성의 필요성이 절실해서 그 목적을 달성할 수단중의 하나로 바자회를 열게 된다는 뜻이다. 2008년의 경우 본당의 살림살이가 다소 어려워져 본당기금 확보를 목적으로 바자회가 열렸었고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였다. 작년의 경우 우리는 어떤 기금조성이 절실했을까? 왜 바자회를 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에 처음에는 ‘성소후원을 위한 기금조성’이라는 답변을 들었고, 이에대해 ‘과연 우리에게 성소가 있는가? 후원금을 모금해야 할 만큼 절실한가?’이라는 의견이 있었으며 그 후 알게 모르게 어느새 ‘청소년기금(청년회후원? 아무튼 정확한 표현이 무엇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으로 목적이 바뀌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라.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 당시 우리 본당에 청년회가 제대로 있기는 했는가? 청년회나 주일학교의 무엇이 바자회를 열만큼 절실한 필요성이 있었는지 아직도 잘 알지 못하겠다. 절실한 목적과 필요성이 있어 바자회를 여는 것이 아니고 바자회를 열기 위해 그 목적을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러면 그렇게 조성된 기금은 어떻게 쓰였을까? 바자회가 끝나고 거의 일년이 지나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까지 그 기금의 집행에 관한 결과를 들어본 적이 없다. 더 곤란한 것은 그 기금의 사용과 회계처리 문제로 요즘 본당 여기저기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린다. 이것이 바자회의 목적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다. 아니 바자회로 인해 공동체내부에 안 좋은 이야기가 오간다면 아니함만 못하지 않을까? 올해에도 본당의 날 행사의 일환으로 바자회를 연다는 발표가 있고 '왜?'라는 궁금증을 가지고 있던 차에 한참이나 지나서에야 ‘노인복지, 사회복지’라는 목적이 알려졌다. 차라리 ‘0000돕기’라는 명분이라면 금새 이해할 수 있고 수익금이 생기면 그곳에 보내면 깨끗하게 정리될 일이지만 이번에도 바자회의 목적이 참 모호하다. 왜, 무엇 때문에 우리 본당에 ‘노인복지’기금이 또는 ‘사회복지’기금이 바자회를 열만큼 절실히 필요한지, 기금이 조성되면 누구에게 어떻게 집행할 것인지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나만 모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알고 있으리라 생각되는 몇몇 사람에게 물어봐도 정확한 답변을 안 해주니 결국 나는 모를 수 밖에 없다.)
물론 신부님이나 사목회장을 비롯 사목위원들께서는 명확한 그림을 가지고 계시리라 믿는다. 다만 그 고귀한 뜻을 명확히 밝혀 신자들이 이해하고 과거에 부족했던 부분들을 협력해서 개선하여 성공적인 바자회를 만들어 나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김용태 요셉